"정부가 누리 과정에 쓰라고 준 돈을 교육감이 왜 못 준다고 하는지 원망스럽습니다. 5개월째 월급날마다 죽을 맛입니다."

전북 전주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이모(53)씨는 최근 5개월 새 빚을 1800만원 냈다. 교사 20명에게 줄 월급이 모자라서다. 누리 과정비 가운데 일부를 지난 4월부터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학부모들이 카드로 결제하는 교육과정비(월 22만원)는 카드사가 대신 지급하고 있지만, 전북교육청이 직접 어린이집으로 보내줘야 할 방과후과정비(7만원)가 끊긴 것이다. 카드사가 대납을 중단할 경우 언제라도 보육대란이 터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씨는 "교사들이 월급이 끊기는 것 아니냐고 수군대고, 학부모들도 불안해하며 유치원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언제까지 빚을 내 어린이집 운영비를 충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어린이집에서는 올해만 원아 수가 20명 넘게 줄었다고 했다.

◇9개월째 불안에 떠는 어린이집

어린이집 원장들은 9개월째 "원아가 줄어든다"며 아우성이지만 어린이집 누리 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편성을 거부한 경기·전북·강원교육감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진보·좌파 성향 교육감인 이들은 지난 5일 정부로부터 1년치 어린이집 누리과정 소요 예산 총액에 가까운 금액을 추경 예산으로 받았지만 "우리는 누리 예산을 한 푼도 편성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실제 전북과 강원은 이번 추경 예산으로 1년치 어린이집 누리 과정 소요 예산보다 많은 액수를 받았고, 경기도는 1년치 예산의 73%인 3973억원을 교부받았다. 그럼에도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누리 예산을 교육청에서 편성할 계획은 없다"며 "이번에 내려온 추경예산은 내년 본예산에 편성해 초·중·고교 교육 사업에 쓰겠다"고 밝혔다. 경기교육청도 "노후 화장실 개선, 에어컨 교체 등 교육 환경 개선 목적으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민병희 강원교육감은 "어린이집 누리 예산은 보건복지부가 책임지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그간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할 여력이 없다고 해 추가 예산을 내려 보냈는데도, 또다시 예산 편성을 거부한 것이다.

반면 진보 진영이지만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5일 추경예산 2128억원 교부가 결정되자마자 "예비비까지 더해 누리 과정 부족액 2244억원을 전액 편성했다"며 "학부모의 불안과 어린이집 운영 어려움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카드사 대납 금액 3591억원 누적

현재까지 어린이집 누리 과정 예산이 편성돼 있지 않았던 지역에서는 지자체가 2~3개월치를 선집행하거나 카드사가 보육비를 대납(代納)하면서 버텨왔다. 국회 교문위 김병욱(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8월 현재 카드사에서 어린이집 보육료를 대납한 누적 금액은 3591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경기 1910억원, 전북 338억원, 강원 299억원 등 2547억원은 앞으로 언제 해결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원래 정부와 카드사 간 계약에 따르면 '1개월까지 대납할 수 있다'고 되어 있지만, 카드사들은 정부 의 협조 요청에 따라 몇 달째 대납을 계속하고 있다. 카드사가 지급을 중단하면 언제든지 보육대란이 터질 수 있는 상황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카드사의 지급 거절 사태가 오기 전에 교육청들이 누리 예산을 빨리 편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경기·전북·강원교육청이 편성하지 않은 어린이집 누리 예산만큼 내년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삭감하겠다는 방침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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